【 EN|JP 】
【 EN|JP 】
김인숙: 미술로 깁는 관계
강재영 (월간미술 기자)
김인숙의 작업에는 사람들이 있다. 집 안에 모인 가족, 학교에서 카메라를 든 아이들, 결혼식 절차를 따라 움직이는 하객들,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축제 속의 사람들까지. 이들은 각자의 언어와 표정, 목소리를 지닌 모습으로 드러난다. 빨리 일을 배우고, 빨리 돈을 벌어서 독립을 이루는 꿈을 꾸는 고등학생 이야기, 막 걸음을 뗀 아이를 돌보며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삶을 살길 바라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는 어떤 사회적 집단을 대표하는 사례라기보단 평범한 나와 내 이웃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김인숙이 전시장에 만드는 일시적이고 유예적인 공간은 관객이 그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 여기서 사진과 미디어는 한 사람을 기록하는 매체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과 작가가 함께 보낸 시간이 머무는 형식이다.
김인숙은 2003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교와 지역 등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시간을 공유하는 장소와 관계에 개입하며 작업해 왔다. 오사카 조선학교, 가족의 집, 결혼식장, 시가현의 산타나학원, 그리고 최근의 군마현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다시 만나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관계는 우연히 시작되기도 하고, 필요에 의해 연결되기도 하지만, 한번 시작된 이후에는 작업을 위해 정해진 형식이나 구조가 아니라 함께 보고 듣고 걷고 먹고 대화하는 시간 안에서 그 성격과 양태가 변화한다. 작가가 채집한 사진과 영상은 전시 공간에서 사운드, 오브제, 설치 등의 시각언어로 다시 구성된다. 김인숙의 작업을 본다는 것은 어떤 한 사회집단에 대한 정보를 얻고 공감을 형성하는 일이라기보단, 그가 만든 관계의 장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된다. 작가는 자신의 실천을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마주하며 관계를 갱신해 온 실천”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1]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가 작품의 주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계는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자, 관객이 작품 앞에서 다시 경험하게 되는 형식이다.
불만스러운 명칭을 대체할 만한 정확하고 효율적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명명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배타성 탓일지도 모른다. 김인숙의 작업은 그만큼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복수의 초점을 지니고 있다. 지역 미술관의 제안으로 산타나 학원과 인연을 맺은 작가는 완벽한 타인에서, 만남을 거듭하며 점차 익숙한 외부인으로, 또한 여러 가지 놀이와 활동을 함께 하는 의지할 만한 지인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능숙하게 사회성을 발휘하여 낯선 커뮤니티의 일원들과 어울리며 라포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하는 일은 그저 작업에 필요한 영상이나 사진 소스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굳이 구분하자면 대상과 거리를 두고 관찰자로서 현장을 기록하는 다이렉트 시네마보다, 현장의 일원으로서 카메라를 들고 사건에 참여하는 시네마-베리테(cinéma vérité)의 전통에 가깝다. 또한 김인숙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관계성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홈 무비를 환기한다.
여기서 카메라는 바깥에서 대상을 관찰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는 카메라를 “사건을 외부에서 고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관계가 생성되는 현장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한다. [2] 인화지에 정착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이미지 안에는 촬영 이전에 오간 대화, 여러 번의 만남으로 쌓인 신뢰의 시간이 함께 담겨있다. 영상은 사진 한 컷에 담기 어려운 목소리와 몸짓과 소리를 전달한다. 김인숙의 초기 초상 사진에서 인물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차갑게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현은 김인숙의 작업을 스크린의 배치, 관람 동선, 사운드의 구조 속에서 읽는다. 실제로 김인숙의 전시에서 스크린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면에 그치지 않는다. 관객은 여러 화면 사이를 이동하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소리를 따라가며, 하나의 고정된 시점으로 환원되지 않는 관계의 구조 안에 놓인다. 이때 사진과 영상은 벽에 걸린 결과물이 아니라, 관객의 몸이 머무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3]
일본 요코하마미술관 재개관전에서 선보인 〈Heesa〉(2025~2026)는 이러한 시간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미디어 설치 작업이다. 이 작업은 〈sweet hours〉(2001~2020), 〈go-betweens, Heesa, 2001-2011–2009〉(2011), 〈SAIESEO : between Two Koreas and Japan〉(2008~2010), 〈The Real Wedding Ceremony〉(2010, 2016)를 재편집해 구성한 공간이다. 여기서 희사(Heesa)는 하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김인숙의 여러 프로젝트를 통과해 온 한 사람이다. 오사카 조선학교에서 만난 초등학교 3학년 아이였던 그는 이제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일을 지속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학교와 가족, 친구와 결혼식, 작가와 함께한 시간이 그의 삶을 축으로 겹쳐진다. 따라서 〈Heesa〉는 한 사람의 삶을 따라 서로 다른 작업의 시간이 만나는 구조다.
이 관계의 구조는 ‘Eye to Eye’(2022~) 연작에서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다. ‘Eye to Eye’는 시가현 산타나학원과의 장기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산타나학원은 일본 시가현 에치군 아이쇼초에 있는 브라질학교로, 1998년에 설립되었다. 이곳에는 브라질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노동자 부모를 둔 0세부터 18세까지의 아이들이 다닌다. 공적 지원의 부족, 운영 재정의 어려움, 지역사회와의 제한적인 접점 속에서 아이들은 브라질인 중심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해 왔다. 김인숙은 2022년부터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콜렉티브(Knots for the Arts)와 함께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예술을 통해 산타나학원과 지역사회의 접점을 넓히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Eye to Eye’는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산타나학원을 바깥에서 바라본 기록이 아니다. 작업은 아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전시를 보고, 자신이 본 것을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이 만남은 학교 안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장소와 사람들, 역사와 축제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지역의 예술 명소를 찾아가고, 그 경험을 책으로 만들고, 다시 그 책을 브라질로 돌아간 친구에게 전한다. 지역 사람들은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학교 안으로 들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Eye to Eye’라는 제목처럼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향해 카메라를 드는 행위만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는 위치를 만드는 일이다.
야마다 소는 ‘Eye to Eye’에서 이 상호적 시선의 구조를 읽어낸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행위는 일방적으로 대상을 포착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앞에 서는 경험이 된다. 이 말은 산타나학원 축제의 현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축제는 완성된 작품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아이들, 교사, 작가, 지역의 사람들, 멀리서 찾아온 관객이 함께 있었다. 누군가는 음식을 나누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소리 속에 머물렀다. 학교는 프로젝트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드나들고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 장소가 되었다.[4]
기회가 되어 작년 행사에 직접 가볼 수 있었다. 도착할 때까지 산타나학원은 그 모습을 선뜻 상상하기 어려웠다. 처음 맞이한 광경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고 기차놀이를 하며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막힌 골목에 마련된 아담한 마당에서 산타나학원의 교장선생님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있는 빵을 연신 권했다. 목이 쉰 작가는 다른 협업자들과 현장 기록과 상황 조율에 바빠 보였지만, 아이들과의 오랜 유대를 나누는 자리는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지만, 분명 그곳은 열려있었다. 작가가 “결혼식을 다시 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한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전시된 〈Eye to Eye, Side :E〉(2025)는 바로 이 축제의 환경적 조건, 흩어져 있던 장면과 소리, 몸의 움직임과 흔적을 다시 배치한다. 여러 스크린은 하나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전달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시선을 나란히 놓는다. 사운드는 아이들의 목소리, 학교에서 보낸 시간의 소리, 주변 환경음, 기존 ‘Eye to Eye’의 흔적을 겹쳐 놓는다. 관객은 하나의 화면 앞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서로 다른 화면 사이를 오가며 관계의 리듬을 따라가게 된다. 축제의 시간이 전시장 안에서 다시 하나의 장이 되는 것이다.
김인숙은 2026년 2월부터 4월까지 일본 군마현에서 추진하는 ‘Gunma Percent for Art 2026’의 일환으로 이세자키시립 요츠바학원 중등교육학교와 함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사진 촬영 행위를 통해 다문화적 관점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거치며 스쳐지나갔던 사람과 이미지가 작품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산타나학원에서 학원과 지역, 아이들과 관객이 서로를 만나는 자리가 열렸다면, 군마현의 작업은 다시 다른 장소에서 다문화적 삶의 조건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이 된 것이다.
김인숙의 작업은 국적, 언어, 가족, 이주, 지역, 역사 같은 사회적 조건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이런 조건을 경계를 설명하는 도구로는 삼지 않는다. 그의 사진과 영상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던 시간을 다시 열고, 관객이 그 안에 잠시 머물 수 있게 한다.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시간을 함께 축적하는 일에는 작가의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 김인숙의 미술은 다름으로 인해 벌어지는 오해와 구분 짓기로 생기는 빈 구멍을 기워낸다. 이미지는 그 자리를 채우며 나와 너의 자리에서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1]요코하마미술관《항상 곁에 있으니까 Art between Japan and Korea since 1945》전 관련 심포지엄 기록집 PDF P48-51 김인숙 「만남과 관계의 수행성」2026 [Read]
[2] 앞의 글 참조
[3] 김정현 「우정과 진실: 돌봄의 공동체를 만드는 수행적 퍼포먼스」 『2025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비평 워크숍 모음집』pp.31~36 참조 [Read]
[4] 야마다 소 「김인숙 《Eye to Eye》에 대하여」2023 www.kiminsook.com 참조 [Read]
※본 글은『월간미술』No.497, 2026년 6월호 Artist (P.114–117)에 게재된 글입니다.
© 2026 KIM Insook.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