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진실: 돌봄의 공동체를 만드는 수행적 퍼포먼스
김정현, 미술비평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김인숙 작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긴 시간을 들여 자세한 내용을 들은 것은 의외로 작품의 설치에 관한 것이었다. 작가의 최근 연작 〈Eye to Eye〉(2022–)는 일본 시가현의 브라질 이주자 커뮤니티를 위해 설립된 산타나 학원(코레지오 산타나)에서 지난 몇 년간 아이들과 교류하고 교감한 시간을 기록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관하여 《에비스 영상 페스티벌 2023》의 커미션 전시부터 2024년 도쿄도현대미술관 그룹 기획전 《번역할 수 없는 나의 언어(翻訳できないわたしの言葉)》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전시가 마련되었다. 첫선을 보인 것이 커미션 기획을 통해서였다고 하지만, 김인숙의 프로젝트는 전시 형식으로 공개한다는 계획이 잡히기 이전에 먼저 시작되었다. 이 지점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을 주요 매체로 익히고 다루는 작가들의 작업에서 창작은 전시 제작의 복잡한 관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으로 인식된다. 물론 어떤 매체를 다루든 전시를 위해 공간의 건축적 구조와 이미지 간의 상호 관계 등을 섬세하게 고려하겠으나, 공간 자체를 작업의 매체로 삼는 작업과 비교하면 회화나 사진 등은 전시 기획 이전의 선(先)제작이 그리 이례적이지 않다.
스크린의 폭과 높이, 멀티스크린의 배치, 관람 동선을 고려한 작품 노출 순서, 이미지의 첫인상에서 문자 정보를 배제하는 결정, 영상의 소리를 지우거나 멀티채널의 영상이 교섭하여 웅성거리도록 한 의도와 같은 것. 그리고 각기 다른 전시 장소, 공간 구조, 기획 맥락에 따라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으며, 심지어 소스 영상과 사진을 거의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작가의 전시가 모두 일본에서 개최되어 실제 관람을 하지 못한 탓에 각각의 전시에서 설치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을 듣는 동안 설치에 관한 작가의 기묘할 정도로 각별한 사고방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지적하자 작가는 반가워하며 강조해서 “저는 거의 설치미술가예요!”라고 외쳤다. 김인숙에 대하여, 그의 주요 매체를 두고 ‘사진가’ 또는 그가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주제에 주목하여 ‘커뮤니티 작가’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던 듯하다. 얼마간 탐탁지 않더라도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가 석연치 않다. 그럼 사진-설치로 그의 매체를 확장적으로 분류하여 마침 작가의 증언도 확보했으니 (거의) ‘설치미술가’라고 정정하면 될 것인가. 어느 쪽이든 그가 한국과 일본에서 손쉽게 ‘자이니치 작가’로 호명되는 것만큼 편협하고 대표성이 없어 보인다.
불만스러운 명칭을 대체할 만한 정확하고 효율적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명명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배타성 탓일지도 모른다. 김인숙의 작업은 그만큼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복수의 초점을 지니고 있다. 지역 미술관의 제안으로 산타나 학원과 인연을 맺은 작가는 완벽한 타인에서, 만남을 거듭하며 점차 익숙한 외부인으로, 또한 여러 가지 놀이와 활동을 함께 하는 의지할 만한 지인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능숙하게 사회성을 발휘하여 낯선 커뮤니티의 일원들과 어울리며 라포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하는 일은 그저 작업에 필요한 영상이나 사진 소스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굳이 구분하자면 대상과 거리를 두고 관찰자로서 현장을 기록하는 다이렉트 시네마보다, 현장의 일원으로서 카메라를 들고 사건에 참여하는 시네마-베리테(cinéma vérité)의 전통에 가깝다. 또한 김인숙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관계성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홈 무비를 환기한다.
십 년 전, 작가는 성북동에서 〈House to Home: 가족이 되는 집〉(2015)이라는 프로젝트를 펼쳤다. 캔파운데이션에서 운영하는 ‘오래된 집’에 머무는 동안 본인의 타지 생활 경험을 반영하여 타인과 가족이 되는 ‘가족의 확장’ 개념을 탐구했다.[1] 여기서 레지던스 주변 성북동 동네 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연루되며 여러 편의 단편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이웃에게 가구를 빌려 카트에 싣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가로지르며 동네의 풍경을 생활과 돌봄의 맥락에서 드러낸다. 중세 시대에 커뮤니티가 “교회의 종소리가 닿는 범위”[2]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여기서는 카트를 굴려 물건을 직접 빌리고 돌려줄 수 있는 범위가 되는 셈이다. 가족의 개념에 대한 탐구는 근방의 가족 단위 및 가족 같은 사이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종의 인류학적 리서치로 이루어졌다.
돌봄의 공동체를 만드는 작가의 수행적 퍼포먼스가 관계의 형식(혈연, 지인, 이웃)이나 장소(집이나 동네)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Eye to Eye〉를 통해 명백해졌다. 거주지인 도쿄에서 교토 인근의 시가현까지 먼 곳을 오가며 작가가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진 비결은 그의 놀라운 친화력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가와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을 관객도 공감할 수 있을까? 전시장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바라보게 될 얼굴들을 대상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작가가 기꺼이 설치미술가가 되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들 공동체에 대하여 사실상 무관하고 무심한 타인인 관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이미지를 추상화하거나 제멋대로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가령 세로캠 포맷으로 편집한 아이들의 초상 쇼츠는 등신대를 넘어서는 비율의 기념비적인 모습으로 스크린을 차지한다. 전시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이미지를 충분히 파악하고 시선의 주체가 되기에 앞서 시선들-이미지에 포착된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실제(또는 확대) 크기의 인물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되는데, 스크린이 종종 앞뒤로 마주 보고 있는 탓에 뒤통수에서 이미지의 시선을 받게 된다.
작가 김인숙의 온정과 친교에는 전복적 태도가 숨어있다. 그는 우정의 배타성을 전유한다. 미술관에서 전문가들이 폐쇄적으로 구축한 매체의 역사와 이론 중심의 예술론에 거리를 두고, 미술관의 시간과 공간의 주권을 그가 사귄 이웃들에게 돌린다. 그는 또한 인간의 얼굴과 이미지의 관계에 관한 관습적 인식, ‘인간 내면의 본질을 포착한 초상 사진’과 같은 수사에 내포된 예술가의 천재성과 예술 작품의 진실에 관한 호들갑에도 유보적이다. 진실은 인간이 시선을 마주하고 애정을 나눈 시간 속에서 생성된다. 작가가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돌본 시간에 관한 것일 테다.
김정현
미술비평가. 저서 『쏟아지는 외부 —소진된 미술의 퍼포먼스』(서울: 미디어버스, 2024). 2015년 제1회 SeMA-하나 평론상 수상. 《마지막 공룡/하나의 사건》(서울시립미술관, 2020),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인사미술공간 외, 2016–2020), 《퍼포먼스 연대기》(플랫폼엘, 2017) 등 기획. 도쿄아트앤스페이스(2023),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2018),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17) 연구자 레지던시.
[1] 김인숙, 『작품 제작과 감상에서의 번역가능성, 김인숙 워크샵의 기록』, 2022 참조
[2] 리처드 세넷, 『살과 돌: 서양 문명에서의 육체와 도시』, 임동근 옮김(파주: 문학동네, 2021), 183–192 참조.
*본 글은 2025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9기 비평워크숍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ye to Eye, MOT Museum Ver.
2024
10-channel video installation
Installation view
Where My Words Belong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4
House to Home, Yebizo Ver.
2024
12-channel video installation.
Installation view
Yebisu International Festival for Art & Alternative Visions 2024:
“Commission Project 2023 – The 1st Special Prize Winners Exhibition,”
Tokyo Photographic Art Museum, Tokyo, 2024.
Photo by NAKAGAWA Shu.
Courtesy of Tokyo Photographic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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