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TCHEON-NAHM(Critic, Curator), Dec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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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명분: 金仁淑の名分

Text by: PARK Tcheon-Nahm (Art Critic, Chief Curator of Sungkok Art Museum)

Web: blog.naver.com/ars1886 



김인숙의 명분(名分)

 

1.

일본에서 나고 자란 '김인숙'. 남도 북도 아닌, '조선적(朝鮮籍) 재일교포 3'라는 '()''()'은 그의 삶과 작업에 있어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또래들과는 다른 이 같은 근원적 명분은 김인숙으로 하여금 일찍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주목하고 자신을 똑바로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지만, 꿈을 접고 다시 사진공부를 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자신의 평범치 않은 명분에 대한 분명한 현실인식 때문으로 이해된다.

 

김인숙의 사진은 학교와 교실이 발산하는 현실문화를 한 축으로, 그리고 재일교포 사회 속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사회화 과정, 특히 자기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엮어내고 풀어내는 일종의 자전적 성장드라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카메라와 사진술을 사용하여 특유의 자전적 결과물을 추출하고 이를 통해 관객과의 이른바 공시적(共時的) 소통 관계를 지향하고 모색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실제 몸담았던 학교와 온몸으로 헤쳐 나온 학창시절을 모티프로 하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과 지난 상황구조를 교차, 중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김인숙의 사진작업은 일종의 자기보고서와도 같아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꿈과 고민이 많았던 청춘시절, 혼돈의 과정을 무난하게 견뎌낸 자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연서(戀書)와도 같은 것이다. 이 시대 흔하디흔한 여타의 포트레이트와는 다른 김인숙의 따스한 시선과 치밀한 앵글이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조선사람, 일본사람, 한국사람,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등과 같은 상징개념들의 물리적/심리적 상충과 제도, 관습, 언어 등과 같은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 징표들이 공존하는 통시적(通時的) 국면이 인상적이다. 김인숙이기에 가능한, 김인숙만의 자전적 포트레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경험이 묻어나는 시의 적절한 시선과 연출은 사진 속 인물과 배경을 끙끙거리며 읽어 내거나 이리저리 뜯어보지 않아도 한 눈에 그들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절과 끈끈하고 애절한 가족사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일부 스냅으로 떠낸 학생들의 밝고 천진난만한 표정이라든가, 연출자로 개입하거나 당사자로 출연한 가족들의 삶의 풍경 등은 모두 김인숙이 견지하고 있는 희망찬 기운과 재일교포로서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특히 이대, 삼대가 모여 있는 가족사진작업은 교포사회에서의 일상의 비()일상성과 그것의 오랜, 건강한 퇴적과정과 추이를 잔잔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삼대, 길게는 100년의 세월이 한 화면에 차곡차곡 먼지처럼 쌓인 역작이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자이니치(在日)의 삶의 풍경과 일상, 그 이면의 심리적 궤적을 추체험(追體驗)하게 하는 작업이다.

 

비슷한 명분의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보다 예의(銳意) 섭외하고 연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다. 김인숙은 많은 시간을 그들과 이야기 나누었다. 작업에 대한 충분한 공감구조를 확보한 상태에서 작업에 임했다. 한 건하기 위해 이리저리 모델을 돌려가며 들이대고 찍어내는 이기적 행위가 아닌, 모두가 '우리'라는 생각으로 빚어낸 이타적 결과물이다. 이러한 김인숙의 재일교포사회의 학교, 가족프로젝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이를 교차하듯 선회하며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며 자신들의 미래적 비전을 함께 그려보고 만나고 확인하려는 서로를 위한 자기정체성 모색 과정에 다름 아니다. 또한 실로 오랜 시간 이어오고 있는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열린 만남 의지를 대중에게 전하고 공유하려는 접점을 모색하고 있음이다. 작가가 본인의 사진작업을 '만나는 행위'라고 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2.

김인숙이 선천적으로 부여 받은 명분이 본원적이고 유전적인 선택의 사안이었다면, 그러한 명분과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한 자기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확인 과정은 일종의 상황주의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하겠다. 정체성을 규명하고 확인하고자 하는 작가의 진정성과 절박한 양상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자신의 일상과 작업, 즉 개인/집단 초상, 이른바 포트레이트 작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매력적 동인이 되고 있다. 김인숙의 포트레이트 작업에서 피사체의 물리적 변화나 징후를 포착하기보다는, 화면 가득 짙게 드리워져 있거나 묻어나는, 그들의 심리적 징후와 이면의 흐름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원에 유학 오기 전까지 김인숙은 일본사회와 재일교포사회에서 줄곧 청소년기와 성장기를 보냈으며, 조선적을 가진 경계인의 신분으로 남다른 자기인식과 태도,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당시 또래의 친구들과 공유했던 이런저런 정체성 혼란의 경험이나 언어, 관습, 제도 등의 차이에서 비롯한 갈등국면은 성인이 된 지금도 비록 명분이나 상황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들 내적/외적 갈등국면은 현재 분명한 한국 사람으로서 경험하는 사회적, 역사적 상황, 특히 학교와 지역, 교실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으로 확장되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 사람이 된 이후 김인숙은 그동안의 이데올로기 중심의 묵은 숙제를 벗어나 보편적 학교제도와 교실문화를 파고들고 있다. 청소년 시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많았지만 학교는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일종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반면 그가 경험한 한국의 청소년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류()의 정체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고민은 없지만, 학교와 교실이라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반발과 고민이 큰 것이 아이러니컬할 따름이다. 이는 작가 김인숙의 작업이 근본적으로 정체성 형성과 모색의 연속선상에 위치해 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사진은 한국 사람으로서 자신이 취하고 있는 현실 인식과 오랜 시간 자이니치로 불려온 교민 입장에서의 인식의 현재를 교차, 중첩시키며 반성적으로 돌아보려는 시도다. 이러한 인식의 탈()근대적 시도는 재일교포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 합리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김인숙의 사진작업은 이렇듯 자신의 현재와 과거의 고민과 기억을 교차시키면서 피사체를 따라 들어가는 회고적 시선과 공감각적 앵글이 특징이다. 그의 사진은 경계인으로 살아온 부모님과 또 그렇게 살아가는 자이니치의 삶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 그들의 속심과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의사 전달 수단으로서의 사진이다.

 

가족과 학교, 사회라고 하는 엄격한 질서와 제도 속에 존재했고 또 존재하고 있는, 앞으로도 존재할 개별자로서 자신과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구성원으로서, 재일교포 출신 한국 사람으로서의 현재적 삶에 대한 이해는 결국 관점의 통시성에 맞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김인숙의 사진 속에 이데올로기나 역사적 관점의 통시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한갓 기념사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역사와 시간의 무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김인숙의 사진은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내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의 의식도 흐르고 있는 것이다.

 

3.

성인이 된, 어엿한 한국사람 김인숙은 지금의 자신을 통해 다시 세상을 보려 한다. 그리고 이 같은 태도가 얼마나 자신에게, 또 비슷한 처지의 후배들에게 중요한 지도 안다. 한국에 안착한 자로서 지난 시절에 대한 역사적 증거자, 목도자로서의 사명을 알고 있음이다. 그가 현실에 대립되는 가상의 제안을 설정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실 김인숙의 작업은 2001년에 시작한 초기작, 'sweet hours'-'아이들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Continuous Way'-'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바라보는 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sweet hours(학교의 하루)'는 학생들의 일상을 통해 학교와 교실의 제도와 문화를 들여다 본 작업으로 지난 2001년 이후 14년째 담아오고 있는 김인숙의 대표적인 작업이다.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덧없음과 매일매일 맞이하는 같은 일상이지만, 각각의 익숙한 새로움을 평범함을 해치지 않는 비범한 시각으로 풀어내었다. 고민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우리'라는 소속감과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성인의 평범성을 거부하고 개성 넘치던 학창시절의 삶을 만나기 위해 지난 시간 속으로 기꺼이 소급해 들어갔다. 경계인으로 방황하던 자신을 힘 있게 잡아주는 구원의 힘은 거기에 있었다. 자신의 작업의지와 지향을 걷잡고 곧추 세우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2004년에 제작한 'letter to you(님에게 드리는 편지)'는 김인숙이 지금의 작업을 하게 된 동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인식과 조상으로 물려받은 정신 유산으로서 그것을 보다 직접적으로 규명해보려는 애절한 체험적 노력이 배어 있는 작업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었나, 나는 궁극적으로 무엇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주지 못했던 지난 시절의 정신적 몸부림이 흠씬 묻어난다.

 

'SAIESEO(사이에서)'는 조선사람, 일본사람, 한국사람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일지 모르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모색의 대표적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두 개의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재일교포로서 경험한 일상의 비일상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들이 견지해 온 굳건한 삶의 의지 등이 켜켜이 배어 있는 김인숙 식의 미장센이 압권이다. 이러한 김인숙의 연출은 이들의 현재를 유전적으로 환원시키려는 태도를 취하거나, 상호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고 변별하기보다는 한 가족이 가지는 통시적 국면의 중요성을 주목한 것으로, 그들의 공시적 관계의 현재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지난 2008, 향후 20년을 내다보고 시작한 프로젝트다. 김인숙의 대부분의 작업이 그러하듯 장기 프로젝트인 것이다.

2013년에 선보인 작업 'go-betweens(중개자)'는 학교시리즈 작업에서 만난 학생아이들이 소녀가 되어가는 개인적/사회적 성장사를 추적한 작업이다. 일정한 주기를 두고 단속적으로 포착한 이들의 개인적/사회적 변모는 각각의 시간적/공간적 배경과 현상의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시대와 나이, 환경과 역할 등에 따른 변화된 이들의 성취동기와 심리의 흐름을 돌아보게 한다. 다분히 회고적이면서 진행형의 미래적인 작업이다. 세대, 사회, 문화, 역사, 나라, 국적,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다양한 경계와 세상을 이어주는 중개자로서의 이들의 역할을 주목하는 것이다.

'Continuous Way(소년들이 소년들에게)'는 한국의 학교와 교실문화를 소재로 했다. 김인숙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과 지역에 거주하는 어르신들과 함께 수행한 공동 프로젝트다. 학생들은 말로만 들어오던, 지역과 학교의 역사와 문화,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뻘 어르신들의 학창시절과 교실문화를 추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의 학교, 교실문화를 모르는 작가에게도 훌륭한 경험이 되었다. 청소년 시절, 일본의 '우리학교'에서 경험한 그것과 한국의 과거, 현재의 학교와 교실문화를 비교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일부는 부부 공동으로 진행했다. 오랜 시간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남편과 함께한 '2013창동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Continuous Way'의 특징 역시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학생과 지역의 어르신 그리고 작가의 지난 추억과 경험, 공동의 그리움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완성되는 현장진행형의 작업이다. 물론 관객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해당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역 학부모와의 인터뷰, 그들이 출품한 이런저런 추억사진 등을 함께 소개하면서 프로젝트의 밀도와 의미를 극대화하였다. 사진과 영상, 오브제 설치작업으로 확장하면서 전과 달리 입체적인 연출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김인숙은 한국의 학교 교육현실을 날카롭게, 공격적으로 꼬집었다. 특히 로컬과의 적극적인 관계를 고려하며 이어가는 특징은 김인숙이 작업의 또다른 전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시장의 제한된 벽()으로부터 현실의 장()으로 시선과 앵글을 기꺼이 이동하는, 보다 생생한 현장감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최근에 선보이고 있는 'Stacking hours' 역시 비슷한 성격의 작업이다.

 

4.

김인숙의 사진은 대상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현란하고 단순한 기술적, 물리적 카메라워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심리적 교감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의 풍경에 자신의 경험과 호흡을 오롯이 이입, 중첩시킨다. 가시적이기보다는 비가시적 프로세스로서 오버랩 된다. 그의 위치는 작가라기보다는 연출가로 이해된다. 또한 김인숙이 그리워하는 지점은 나라나 국적이 아니라, 가족과 학교임을 알 수 있다. 가족과 학교는 하나의 분명한 사회이지만, 가족과 학교는 사회의 시스템과 분명하게 다르다. 사회가 가족이고 학교일 수는 없다. 사회화가 되면 될수록, 어른이 되면 될수록 가족과 학교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감히 그 누구도 지울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본향(本鄕)이기 때문이다.

 

김인숙의 지난 작업이 가족과 학교, 교실 그리고 학생, 이들의 문화를 통해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역사적/()역사적으로 반추하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작업은 다음 세대가 경험할 전통과 현실을 예비하며 작금의 전도된 사회, 교육현실을 예의 지적하고 있다. 단순한 가정법 과거시점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 제도적 관점이나 태도가 의미하고 시사하는 바를 현재적 시점으로 돌아보며 미래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이 역사적/비역사적 여운을 넘어 현실인식의지가 강하게 배어나는 설치작업 등으로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김인숙의 작업은 과연 '민족'이란 무엇이고 '전통'이란 무엇이며 '가족' 그리고 '학교'란 무엇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다행히도 그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다. 작업지향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결과물도 냉정하리만큼 정확하다. 더욱 또렷해지고 있는 그의 소명의식에 다름 아닐 것이다.

 

박천남(미술평론가,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PARK Tcheon-Nahm (Art Critic, Chief Curator of Sungkok Art Museum)